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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그린스페셜] 가파도의 바다로 뛰어든 여자

바다와 바다를 '친정'으로 여기는 여성들을 뷰파인더로 바라보던 유용예. 그는 직접 바닷속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그가 10년간 온몸으로 채집한 가파도의 변화, 그 요동치는 파도의 울음소리.

프로필 by 전혜진 2024.04.02
바다의 봄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모자반 군락지. 2019년 봄을 마지막으로 가파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바다의 봄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모자반 군락지. 2019년 봄을 마지막으로 가파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유용예는 열세 살에 처음 겨울바다를 목도했다. 언덕에 오르던 순간 눈으로 밀려 들어온 광경, 햇살에 찬란히 부서지던 푸른 남쪽 바다와의 만남을 그는 ‘판타지’로 정의한다. “이후부터 늘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로 향했어요. 스물네 살 봄에는 카메라 하나 메고 남쪽 제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최남단 마라도로 향하는 여객선에 올라 배 난간에 기대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저 멀리 바다에 잠길 듯 온통 초록색으로 덮인 낮은 섬을 발견했어요. 그 초록 이끼의 반짝거림은 처음 바다를 만난 순간을 떠올리게 했죠.” 결국 원래 목적지인 마라도에 내리지 않았고 그길로 가파도로 향했다. 그 인연을 시작으로 2012년, 가파도에서 우연히 만난 해녀 할망에게서 바다의 삶에 대한 얘기를 듣고 해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바위마다 촘촘하게 붙어 자라난 구멍갈파래.

바위마다 촘촘하게 붙어 자라난 구멍갈파래.

“바다 밖에서 바라보는 가파도는 유독 검푸른빛을 띱니다. 조류가 거세기 때문이죠. 그 영향으로 바닷속에서는 모살밧(모래밭)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검은 암반 지대인데, 그것이 바다 밖으로는 깊고 거칠어 보일지라도 바닷속 상황은 다릅니다. 바닷속 지형은 섬의 낮고 완만한 평지와 비슷하거든요.” 가파도 바다는 낮고 넓은 조간대부터 먼바다까지 15m 깊이 내외, 60여 개의 바다밭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숨은 여(바닷속에 잠겨 있는 바위 지형)가 잘 형성돼 있어 해조류가 자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또 남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계절에 맞춰 다양한 어종들이 이동해 가파도 바다에 머문다. 유용예는 2014년부터 가파도 해녀들과 같은 해녀복을 입고 한 손에는 ‘테왁’을, 또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어가며 바닷속 이야기와 해녀들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2015년 겨울 가파도 동바당. 가파도의 거친 물살을 바라보는 해녀의 뒷모습. 나이든 해녀 할망들은 바다의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2015년 겨울 가파도 동바당. 가파도의 거친 물살을 바라보는 해녀의 뒷모습. 나이든 해녀 할망들은 바다의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당시 바닷속의 풍요로움은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해녀들의 물질을 촬영하는 걸 잊을 정도로 유영하는 수많은 생명과 매일매일 바뀌는 풍경을 마주하는 건 설레고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붉은 황금 비늘로 온몸을 장식한 채 그 길고 아름다운 몸과 지느러미를 천천히 움직이며 제게 가까이 다가오는 푸른 눈의 황돔과 마주하거나, 구름 같은 꽃멜(꽃멸치) 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이는 움직임에 물 위로 숨 쉬러 올라가는 걸 잊기도 했습니다. 성게를 한창 채집하는 시기에는 돌돔이 다섯 마리씩 무리 지어 해녀들을 쫓아다니기도 했죠.” 그중 가장 근사한 풍경은 한라산의 눈이 녹아내려 바다에 찬기가 극한으로 올라갈 즈음인 2~3월 사이, 모자반이 10m 이상 자라 겹겹이 그 뒤를 볼 수 없고, 해를 가릴 정도로 숲을 이루는 모습이다. 2018년 2월 가파도 서쪽 바다에 모든 해녀가 들어가 모자반을 채집하던 풍경은 유용예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한 해녀 공동체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이 든 해녀 할망들이 모이면 늘 농담처럼 하는 말씀이 있어요. ‘바다는 내가 항상 빈손으로 가도 절대 빈손으로 나를 집에 돌려보내지 않아. 친정어머니처럼 무엇이든 내주시거든. 바다는 우리 어머니 같아. 맞아, 어머니야.’”

지금은 사라져 버린 톳 허채를 진행 중인 해녀들. 해녀들은 공동체다. 이들뿐 아니라 가파도 마을 주민들은 환경 친화적인 채취와 다양한 협업 활동으로 바다를 지키며 상생을 모색한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톳 허채를 진행 중인 해녀들. 해녀들은 공동체다. 이들뿐 아니라 가파도 마을 주민들은 환경 친화적인 채취와 다양한 협업 활동으로 바다를 지키며 상생을 모색한다.

친정어머니의 품은 최근 기상 이변으로 더는 안온하지 않다.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지구 평균기온 상승(2022년 기준 1.15℃)에 따른 평균 해수면 상승률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로 인해 현재 가파도의 갯녹음 현상은 심각한 상태. 가파도 어촌계 마을 어장의 면적은 축구장 400여 개에 달하고, 주요 생산 해패류는 뿔소라 · 전복 · 해조류인데 해조류 중 미역 · 톳 · 모자반은 매해 해녀들과 섬 주민이 모여 공동 작업을 해도 인력이 부족할 정도로 풍요로웠으나 본격적으로 모든 해패류 서식지가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섬 어디서든 넘쳐나던 미역을 가파도 서쪽 바다에서만 채취할 수 있었다. 그해 봄에 본 것을 마지막으로 2020년 가파도의 미역과 모자반은 완전히 사라졌다. 섬 조간대 어디서든 잘 자라던 톳의 생장 시기 또한 점점 늦어지더니 평균 수확기인 3월이 지나도 10cm 이상 자라지 못한 채 뜨거운 햇살에 녹아버렸다. 2024년 3월 현재까지 가파도의 주요 수입원인 미역과 톳, 모자반의 수확량은 ‘0’에 가깝다.

물질 중인 해녀. 해녀들은 잠수한 후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호오이!”라는 숨비소리를 낸다.

물질 중인 해녀. 해녀들은 잠수한 후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호오이!”라는 숨비소리를 낸다.

“해조류가 바다에서 사라지자 연쇄 작용으로 성게알과 소라, 전복, 어류까지 먹이활동 생태계의 악순환이 시작됐습니다. 가파도에 마을이 생겨난 이래 해녀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바다를 단순 채취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갯닦이와 해안 쓰레기 청소, 작은 개체 이식 등으로 끊임없이 바다를 가꾸며 지켜왔는데, 이제 다들 그나마 남은 뿔소라를 찾느라 바쁘기 그지없어요. 다시 톳과 미역이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갯녹음과 물이끼로 덮인 갯바위들을 온몸을 담가 긁어내보지만 그것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가파도 바닷속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데다 아낌없이 해조류를 제공하는 덕에 해녀들은 바다를 ‘친정 어머니’라 불렀다.

가파도 바닷속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데다 아낌없이 해조류를 제공하는 덕에 해녀들은 바다를 ‘친정 어머니’라 불렀다.

바다가 삶, 삶이 곧 바다인 해녀 할망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미 80대가 된 지금에도 그들의 삶은 계속 바다를 향해 있는데 말이다. “가파도의 최고령 해녀는 올해 아흔 살입니다. 13세에 처음 바다에서 콸락테왁(작은 박으로 만든 옛 테왁)을 가지고 물질을 배웠다니 거의 77년 동안 물질을 해온 셈이죠. 아직도 물때가 되면 그녀는 바다로 향합니다. 그 풍요롭던 바다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면서 변화를 받아들이기는 힘듭니다.” 할망들은 비록 바다를 떠날 때가 됐지만, 그래도 생명들은 다시 돌아오겠거니 하는 막연한 기대에 찬 말을 공허하게 내뱉는다. 이제 해녀들과 어업인들의 조업은 ‘사투’에 가까워졌다. 유용예는 ‘이 극단적인 바다 사건’이 해녀들은 물론, 섬 주민의 삶과 가정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해녀들은 조업 기간이 아닐 때는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열악한 환경에 놓인 해녀의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오늘날 그 어려운 제주의 역사와 생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해녀와 어촌마을의 문화는 수많은 오염과 기후 변화의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채 지울 수 없는 상흔을 입고 있습니다.”


 해녀 문화가 세계 주요 농어업 문화유산에 등재됐지만,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해녀 문화가 세계 주요 농어업 문화유산에 등재됐지만,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사진가이자 해녀, 그리고 가파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어촌계장이기도 한 유용예는 최근 ‘후쿠시마 어민 초청 방사능 오염수 무단투기 저지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는 그곳에서 힌트를 얻었을까. “토론장에서 만난 일본 어민의 발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다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발언이었습니다.” 그가 가파도의 사람으로서 바다의 변화 앞에 당부하고 싶은 말도 같은 맥락이다. “기후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 그 수위는 더 높아질 겁니다.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그 소리 없는 경고 앞에 우리 해녀와 어업인의 생계는 해양 생태계와 함께 최전선의 갯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형국입니다. 일본 어민의 말처럼 이 문제는 비단 우리 바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해역 남쪽 최전선을 시작으로 모두 하나로 이어진 바다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가파도의 미역과 톳, 모자반이 사라지자 연쇄 작용으로 성게알, 소라, 전북, 어류의 먹이활동을 파괴하는 생태계 악순환이 시작됐다. 해녀들의 생존 문제와도 직결된다.

가파도의 미역과 톳, 모자반이 사라지자 연쇄 작용으로 성게알, 소라, 전북, 어류의 먹이활동을 파괴하는 생태계 악순환이 시작됐다. 해녀들의 생존 문제와도 직결된다.


유용예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유용예는 안락한 삶에도 불구하고 가파도로 향했다. 지친 그에게 그곳 해녀 할망과 나눈 몇 마디 대화는 가파도에 정착해야겠다는 결심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부터 그는 해녀들과 숨 쉬고 물질하며 그들의 애환을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더 가까이 들여다보기 위해 법환해녀학교에서 80시간의 교육과 3개월의 인턴 생활을 거쳐 가파도 어촌계에 해녀로 정식 입성했다. 마을 담벼락에 사진을 전시하던 것을 계기로 <할망바다> <물 벗> 등 개인전을 개최하고, 2017년 사진집 <할망바다>를 펴냈다. 그는 지금 가파도 어촌계장으로 눈앞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지속적인 기록과 사진 작업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포토그래퍼 김상수
  • 아트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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