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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돌들이 말할 때까지' 다섯 할망의 목소리

4·3사건 이후 76년, 제주 여성들은 돌처럼 오래 굳힌 이야기를 비로소 꺼내 놓았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 김경만 감독이 제주 풍경과 함께 포착한 다섯 할망의 목소리.

프로필 by 전혜진 2024.04.25
1940~50년대, 당시 제주도민 10분의 1 이상 목숨을 앗아간 4 · 3사건은 모두에게 뼈아픈 기억이다. 그중에서도 스무 살 내외의 나이에 재판도 없이 형무소로 끌려갔던 다섯 할머니의 이야기에 주목한 이유는
울림이 컸다.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하는 할머니들의 태도와 톤, 표정과 언어는 저마다 달랐지만 모두 자신만의 언어로 그날을 이야기했다. 임신한 몸으로 몽둥이질 당하고, 업힌 채 함께 매맞은 갓난쟁이를 치료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떠나보내고, 죄목 없이 공개 총살당하는 가족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등 혹독한 일을 겪은 할머니들은 그럼에도 자기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계셨다. 저항과 학살이라는 측면에서 4 · 3사건을 누구보다 입체적으로 증언할 수 있는 화자였다. 4 · 3사건 수형인들의 억울함을 약 70년만에 풀게 된 2019년 재심 재판 과정을 영화로 남기는 것도 중요한 목표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제주의 자연 풍경

영화에 등장하는 제주의 자연 풍경

해방 직후 팍팍한 삶을 살던 여성들, 특히 갓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섬의 여성들에게는 더욱 가혹했던 사건이었다
전쟁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든 최악의 경험을 겪게 되는데 4 · 3사건은 전쟁이 아님에도 여성에게 매우 가혹했다. 여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수반됐다. 홀로 생존하기도 힘겨운 환경에서 아이까지 책임져야 했던 경우가 대다수였다.

김경만 감독.

김경만 감독.

증언을 영화화하며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이 영화가 위로가 될 순 없겠지만, 할머니들이 여전히 내재된 두려움으로 오래 숨겨온 이야기를 꺼내 말하는 과정 자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생존자들보다 이후 세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할머니 가족들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잠깐 스치는 이야기만으로도 4 · 3이라는 역사가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에 어떻게 영향을 끼쳐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4월 17일 개봉작 <돌들이 말할 때까지> 포스터로 활용된 작품. 이야기의 생생한 울림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돌과 모래를 통해 자연과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윤위동 작가의 회화와 협업을 진행했다.

4월 17일 개봉작 <돌들이 말할 때까지> 포스터로 활용된 작품. 이야기의 생생한 울림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돌과 모래를 통해 자연과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윤위동 작가의 회화와 협업을 진행했다.

여전한 두려움에 자식에게조차 내막을 털어놓지 못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할머니들과 전혀 친해지지 못했다. 그들에게 나는 낯선 육지 남성이었을 뿐,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면접조사를 수행한 도민연대와 변호사들 덕분에 진행될 수 있었다.

할머니들은 영화를 보셨을까
직접 본 건 송순희 할머니가 유일하다. 박춘옥 할머니는 촬영 당시 시력이 좋지 않으셨고, 다른 세 분도 영화 완성 시점에 건강상 이유로 보여드릴 형편이 되지 못했다. 대신 가족들이 봤는데 특히 송순희 할머니의 따님들과 김묘생 할머니의 큰 따님이 고마움을 표해 주셨다. 박춘옥 · 송순희 할머니는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영화는 당시 18세 제주읍 오라리 출신의 양농옥, 20세 제주읍 화북리 출신의 박순석, 22세 표선면 가시리 출신의 박춘옥, 20세 표선면 가시리 출신의 김묘생, 23세 남제주군 의귀리 출신의 송순희 할머니의 증언을 담았다.

영화는 당시 18세 제주읍 오라리 출신의 양농옥, 20세 제주읍 화북리 출신의 박순석, 22세 표선면 가시리 출신의 박춘옥, 20세 표선면 가시리 출신의 김묘생, 23세 남제주군 의귀리 출신의 송순희 할머니의 증언을 담았다.

관객들이 기억하고 떠안아야 할 과제가 있다면
근래 4 · 3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과와 보상이 있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4 · 3에 대한 실체적 인식은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고, 실제로 일어난 일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관성적인 믿음으로 역사를 보려 한다면 그것이 과연 역사일까. 과거에 무지한 채로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거나 재연을 통한 구성이 아닌, 할머니들의 증언과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교차하는 구성을 취한 이유는
제주 풍경은 4 · 3사건의 참혹함과 괴리감이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야 했다. 관광산업에서 소비되는 제주와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자연이 4 · 3사건의 그날을 기억하고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다.

영화는 당시 18세 제주읍 오라리 출신의 양농옥, 20세 제주읍 화북리 출신의 박순석, 22세 표선면 가시리 출신의 박춘옥, 20세 표선면 가시리 출신의 김묘생, 23세 남제주군 의귀리 출신의 송순희 할머니의 증언을 담았다.

영화는 당시 18세 제주읍 오라리 출신의 양농옥, 20세 제주읍 화북리 출신의 박순석, 22세 표선면 가시리 출신의 박춘옥, 20세 표선면 가시리 출신의 김묘생, 23세 남제주군 의귀리 출신의 송순희 할머니의 증언을 담았다.

제목은 김소연 시인의 시구 ‘돌이 말할 때까지’에서 착안했다
누군가에게는 먼 과거로 치부되는 일이겠지만 분명 미래와 연결된 이야기다. 아직도 사회는 역사를 말하거나 부당한 일에 저항하거나 혹은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정치적 편향으로 읽히고 비난한다. 이에 대한 질문은 단단한 돌이 말을 할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아트 디자이너 정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