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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서로 다른 우리, 우당탕탕 밀스와 뭉이

홍지영의 식탁을 기웃대는 밀스와 뭉이. 생김새도, 출신도, 입맛도 다른 두 강아지의 진짜 가족 만들기 레서피.

프로필 by 전혜진 2024.05.12
하얀 벚꽃을 닮은 ‘하얀 애’ 뭉이는 사람을 유별나게 사랑한다. 두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랑을 받았던 적 있는지 자문할 정도니까. 반면 큼직한 ‘노란 애’ 밀스는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구하지 않는다. 조용히 앉아 있으면 나름대로 그 옆에 몸을 말고 잠드는 데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랄까. 밀스는 사람보다 신나는 모험을 좋아하기에 늘 새로운 길로 걷고 싶어 하고, 먹을 것도 좋아해서 산책을 나가자고 조르다가도 베란다에서 씨앗을 파종하거나 부엌에서 토마토를 손질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다가와 사람으로 치면 자기도 배워야겠다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한다.

밀스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후 ‘포인핸드’ 앱을 살피다 발견한 유기견이다. 아프다고 적힌 자신에 대한 설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 웃는 사진에 마음이 쓰여 임시보호를 결정했고 심장사상충이 완쾌될 때까지만 함께하려 했지만 정이 들어 결국 같이 살게 됐다. 밀스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땐 아주 마른 강아지였다. 몇 년 전 찍어둔 사진을 보면 밀스를 어깨높이만큼 번쩍 들기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밀스의 체격은 대형견과 중형견의 범위에 발을 한 쪽씩 붙이고 있는 듯하다. 당시 밀스는 그간 큰일을 겪어서 지쳤다는 듯 바닥에 풀썩 드러누워 온종일 얕은 잠만 잤다. 선명한 목줄 자국과 함께 늘 머뭇거리는 모습으로 거리를 두고 현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던 밀스가 어느 날 소파 아래에 슬쩍 누워 같이 TV를 보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해 줬을 때, 온 가족은 너무 기쁜 나머지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한편 뭉이는 동생이 데려온 강아지다. 밀스와 달리 낮에는 항상 집 한구석의 해가 가장 잘 드는 자리에 누워 쉬다가 저녁이 되면 소파나 침대 위로 올라와 자연스럽게 가족들 머리맡 한구석을 차지하는 일이 이 ‘어리광쟁이’의 일과다. 아무거나 잘 먹는 밀스와 다르게 뭉이는 입도 짧고 음식 투정도 곧잘 해서 여전히 어리게 느껴진다. 뭉이는 사료를 한 입씩 받아먹어야 하고, 딸기나 토마토같이 신맛이 있는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거나 좋아하는 밀스는 그런 뭉이가 남긴 과일을 맛있게 받아먹는다. 덩치가 여덟 배나 차이 나는 이 식구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고구마와 쇠고기를 좋아한다는 것인데 밀스는 상추나 배추도 와작와작 먹지만 뭉이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렇게 입맛 다른 녀석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자기가 좋아하는 상추 꼭지와 토마토를 쫓으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그런 까다로운 뭉이가 곁을 허락한 유일한 강아지가 밀스다. 처음 뭉이가 밀스를 만났을 때는 엄청 화를 냈다. 아마 자신이 사랑하는 엄마가 밀스를 칭찬하며 예뻐해주니 샘이 났나 보다. 그 밖에도 뭉이가 화낸 이유는 많다. 밀스는 엄마의 칭찬도, 화내는 뭉이의 반응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거침없이 뭉이의 물과 밥을 훔쳐먹거나 뭉이의 리드 줄과 간식을 종종 ‘빌리곤’ 하니까. 뭉이는 이제 밀스의 귀여운 절도를 용인해 주는 듯하다. 간식과 사료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의 사랑이란 걸 아는 것 같다. 밀스는 그런 뭉이의 인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벙글벙글 웃으며 식탁 옆에 앉아 있다. 밀스와 뭉이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모습,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까칠한 뭉이도 나름 밀스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둘이 그런 방식으로 함께 있는 것은 어쩌면 뭉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용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둘을 보며 개가 아닌 사람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를 떠올린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지붕 아래 살아가면서도 곧잘 다투지만 이내 머쓱한 화해를 건네며 풀어지고, 그렇게 함께 살아온 가족 말이다.

밀스는 이상하게 생긴 개다. 멀리서 보면 진돗개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여간 구분이 어려운 게 아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개와 빗대 밀스가 ‘오리지널’ 시바견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밀스의 큰 덩치 탓에 차우차우냐고 묻거나 맬러뮤트처럼 생겼다고도 말한다. 뭉이도 마찬가지다. 희고 곱슬곱슬한 털을 가진 작은 푸들이지만, 비숑프리제로 많이 착각하는 것 같다. 밀스를 유기견이라고 소개하면 안타깝다는 탄식부터 나온다. ‘좋은 일 했네’ ‘힘들지 않냐’는 이야기들을 위로처럼 건네기도 한다. 힘들게 살아왔고, 먹을 걸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존재라 여기지만 그럴 때 우리는 가평 산골짜기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밀스의 모습을 떠올린다. 싱글벙글 웃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마음 가는 대로 돌아다니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에게 아는 척하는 그런 모습을. 자유롭게 살다 온 이 개는 도시 개인 뭉이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밀스는 뭉이에게 좋은 장난감을 고르는 방법, 재미있게 생긴 솔방울을 고르는 방법, 큰 떡갈나무 이파리를 골라서 노는 방법을 알려준다. 뭉이가 배우지 못했던 것들 말이다. 반면 뭉이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밀스에게 인간을 대하는 법을 알려주곤 한다. 뭉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는 처음에는 밀스처럼 큰 개에 익숙하지 않아 겁을 냈다. 그러나 밀스를 먼저 보고 온 가족들이 강아지가 너무 착하다며 칭찬하는 걸 듣고 말없이 쓰다듬던 다정한 손길은 아마도 뭉이가 먼저 집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밀스를 예뻐하는 엄마의 손길을 보고 뭉이는 강아지 말로 엉엉 울었다. 이 모든 따스함을 전부 자기가 알려줬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말이다.

우리는 이제 각자 다른 집에서 살고 있다. 뭉이는 동생과 가족들의 집에, 밀스는 우리 집에서. 그러나 아주 가까운 곳이기에 아침에 산책하다 혹은 퇴근 후 길에서도 종종 마주친다. 나란히 걷다 보면 뭉이는 매번 경계하듯 짖다가도 이내 궁금한 듯 주변을 빙빙 돌며 관찰하는데, 밀스는 그런 뭉이를 항상 차분하게 기다려준다. 그렇게 다투다가도 언제 싸웠냐는 듯 나란히 걷는 뒷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과 꼭 닮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서로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살아와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우리 가족이 돼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세상은 불가사의하고 두려운 것투성이지만 개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 세상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종종 이 녀석들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밀스가 더 좋은 도토리를 찾는 방법을 뭉이에게 알려줄 수 있을 때? 혹은 뭉이가 밀스에게 인간과 함께 사는 방법을 모두 전수할 수 있을 때까지? 뭉이와 밀스가 곁에 있는 이 시간이 언젠가는 그리워지겠다는 생각으로 바보처럼 걱정에 빠져들지만, 이 개들은 그때마다 항상 기쁜 얼굴로 내 눈을 바라보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활짝 웃는다. 어쩌면 이 녀석들은 가장 중요한 걸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항상 서로 곁에 있어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너무도 다른 두 존재가 엉겨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늘도 소중한 이들과 가족이 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홍지영

밀스와 뭉이의 가족. 간단 도시락과 한 그릇 요리 레서피들을 두 마리 반려견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함께 담아낸 <도시락과 강아지의 기웃댐> 저자이자 트위터 ‘도시락과 왕강아지의 기웃댐’ 계정주다. 서로 든든한 가족이 돼가는 과정을 콘텐츠로 기록하고 있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홍지영
  • 일러스트레이터 KAY MCDONAGH
  • 아트 디자이너 구판서
  • 디지털 디자이너 이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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