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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신대륙의 개척자로 나선 디자이너들의 생생한 체험기

인공지능으로 구현한 멋진 인테리어와 건축이 현실세계에 존재할 수 있을까?

프로필 by 이경진 2024.03.15
대중에게 각인된 최초의 AI 이미지 중 하나는 개의 눈과 머리가 기괴한 성운 속에서 섞이는, 초현실적이고 악몽 같은 장면이었다. 2015년, 구글이 생성형 인공지능 ‘딥 드림(Deep Dream)’으로 완성해 공개한 이미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달리(Dall·E)와 미드저니(Midjourney),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등은 매거진 커버를 장식하는 인테리어 디자인 이미지부터 유토피아적인 도시 풍경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르에서 설득력 있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건축가와 디자이너에게는 이미지 생성형 AI가 어떤 영향을 미쳐왔을까?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Zaha Hadid Architects) 디렉터 패트릭 슈마허(Patrik Schumacher)는 지난 4월 한 인터뷰에서 스튜디오가 생성 AI를 통해 이미지를 되풀이하는 것이 디자인 솔루션에 영감을 준다고 인정한 바 있다.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를 떠나 독립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팀 푸(Tim Fu)는 AI 도구로 작업을 계속해 왔으나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우리는 AI로 어떤 것을 창조할 때, 이 기계가 마음껏 환각을 일으키도록 내버려두는 경향이 있어요. 맥락에 맞는 이미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여전히 인간의 참여가 필요하죠.” 지금까지는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에 머물러 있지만, 푸는 AI를 통해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현실로 만드는 선구적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파라메트릭 건축의 급강하 곡선에서 영감받은 석조 주두(기둥의 장식 상단)를 표현한 푸의 디자인 ‘AI Stone Columns’는 미드저니(Midjourney)에서 구현됐고, 이후 석공인 틸 아펠(Till Apfel)이 실제 조각에 사용할 수 있는 청사진으로 변환했다. “AI가 디자인의 일부를 담당하게 되면 인간은 아마도 실제 제작 과정에 자신의 예술성을 다시 발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를 졸업한 디자이너 줄 반 덴 휴벨(Juul van den Heuvel)은 달리 4(Dall · E4) 그리고 미드저니(Midjourney)와 함께 논문 <(A)I Designed A Chair>를 완성해 ‘네덜란드 디자인 위크(Dutch Design Week)’에 선보였다. 반 덴 휴벨은 500개 이상의 의자 이미지를 만드는 프로젝트에서 점진적으로 자신의 프롬프트를 개선해 디자인 프로세스를 완수했다. 그러나 비대칭 타원형 베이스에 균일한 울트라 마린 색상으로 만들어진 반 덴 휴벨의 의자 디자인은 인공지능의 한계를 드러냈다. “저는 AI 디자인을 직시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토록 이상하게 생긴 의자를 선택한 이유죠.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기술을 탐구하는 것이 우리 의무라고 생각해요.” AI 디자인 작업에 대한 반 덴 휴벨의 결론이다.
 
2023년은 인공지능이 강타한 해였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의 관심은 AI가 가진 잠재적 위험보다 한참 앞섰다. 2019년 ‘밀란 가구 박람회(Salone del Mobile)’에서 카르텔(Kartell)이 선보이고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이 디자인한 체어 ‘A.I.’는 디자이너가 오토데스크의 인공지능 도구에 붙인 질문 ‘어떻게 하면 가장 적은 양의 물질과 에너지로 우리 몸을 지탱할 수 있을까?’에서 비롯됐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며, 싱가포르 공과대학의 지속 가능 디자인학과 조교수인 카를로스 바논(Carlos Ban˜o´n)은 지난 2021년, 필립 스탁과 비슷한 방법론을 사용해 테이블의 매끄러운 대리석판을 받쳐줄 다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는 인공지능과의 반복적인 대화 그 자체였습니다. AI가 어떻게 대화하고, 상호작용하고, 정보를 전달하는지 배울 필요가 있어요.” 바논의 대표적인 생성형 AI 작업은 다른 레벨 사이에서 흐르고 뒤틀리는 것처럼 보이는 괴상한 계단이다. 그의 AI 계단 이미지는 입소문을 타 인스타그램에서 85만 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 괴상한 계단 이미지는 한 영국인 고객의 관심을 끌었고, 바논은 다른 예술가와 협력해 어떻게 하면 대형 CNC 가공 기계가 꿈의 인테리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바논은 인공지능 작업으로 꽃 모양의 좌석을 탐구 중이다. 그의 반투명하고 유기적이며 우아한 ‘블러섬’ 좌석 작업은 인공지능 도구가 생성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한 끝없는 변형을 보여준다. 배논은 싱가포르에서 사용 가능한 3D 인쇄 시스템으로 ‘블러섬’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일 예정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미래 도시국가에 있는 공원에도 ‘블러섬’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바논의 작업은 소셜에서 ‘좋아요’ 기록이 실제 커미션 작업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다. 
 
진정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는 인공지능과의 반복적인 대화 그 자체였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디지털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인 안드레스 레이싱어(Andre´s Reisinger)는 팔리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데 수반하는 방대한 낭비를 꼬집는다. “AI 디자인을 통해 제품을 제공하기 전에 디지털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모든 제품에는 디지털 수요 창출이 필요해질 거예요.” 수국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그의 ‘호르텐시아’ 체어는 레이싱어와 섬유예술가 줄리아 에스케(Ju´lia Esque´)가 협업한 결과로, 지난 2022년 무이(Mooi)가 의자로 생산한 적 있다. 호르텐시아는 2018년 NFT 예술 작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레이싱어는 AI를 호르텐시아 디자인 과정에 적극 참여시켰다. 이제 그는 이 도구를 ‘무의식에 잠들어 있는 아이디어를 꺼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사용한다. 안드레스 레이싱어가 발표한 최근 시리즈 ‘인수(Takeovers)’는 인스타그램에서 또 다른 히트작이 됐다. 친숙한 거리 풍경에 드리워진 흐릿한 분홍색 천(일부는 매끄럽고 일부는 엄청나게 흐릿하다)을 상상한 장면들. 이와 같은 비전은 현실세계에서 곧장 실현하기는 어렵겠지만, 도시 환경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할 수 있다.
 
밀란에 기반을 둔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하네스 피어(Hannes Peer)는 AI를 가치 있는 도구로 여긴 지 오래다. 2016년 선보이자마자 반향을 일으킨 피어의 ‘마모르’ 프로젝트는 버려진 대리석 채석장에 지어진 생활공간을 상상한 것이었다. 피어의 스튜디오가 창조한 허구의 채석장 아파트를 구입하겠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AI로 상상의 공간을 창조하는 과정에서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선호도에 의해 미적인 시행착오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그러나 AI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물리적 공간이 가질 수 있는 정교함이 부족하고, 비현실적으로 매끄러우며,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 불완전함이나 파티나(Patina)를 찾아보기 힘들다. 피어에게 AI는 여전히 디자인 아이디어의 원천이라기보다 활용할 수 있는 불완전한 도구다. 가상 인테리어에 관한 책 <디자인 드림즈 Design Dreams>를 출간한 런던 출신의 디지털 아티스트이자 아트 디렉터, 디자이너인 샬럿 테일러(Charlotte Taylor)는 생성형 인공지능에 의존적인 작업을 펼쳐왔다. 그의 습작인 ‘메종 드 세이블’은 정글에 떠 있는 유리 빌라, 메드 강에 있는 동굴 같은 주거지, 화성에 지은 호텔을 포함해 이미지 작업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디자인을 물리적 영역으로 발전시키기를 원했던 샬럿은 분필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그 공간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저는 여전히 촉각적인 방식으로 디자인하고, 계획을 그리는 동안 항상 여러 개의 도구를 바닥에 펼쳐놓습니다.”


이 과대 광고 같은 글에 흥분이 일었든 걱정이 커졌든, AI의 디자인 서사는 지금부터 시작인 것만은 분명하다. 현재로서는 아직 AI가 디자이너와 공예가, 건축가들을 완전히 대체할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영감을 주는 발판이자 새로운 공간과 제품을 시각화하는 도구로 여겨질 것이다. 지금 AI는 그 어느 때보다 창작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둔 상자 바깥에서 더 먼 곳을 바라보며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writer Peter smirk
  • 아트 디자이너 구판서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