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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의 세상보기] '저 너머의 형태' 안충국 작가


[탈북민의 세상보기] '저 너머의 형태' 안충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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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작가 안충국 씨는 올해 고향인 함경도와 서울에서 보낸 시간이 같아지는 해를 맞이했습니다. 고향에서의 기억과 서울에 정착하는 과정의 경험은 작가의 작품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요. 안 작가는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저 너머의 형태'를 통해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저 너머의 형태' 전시 현장으로 안내해 드립니다.

탈북 작가 안충국 씨는 올해 고향인 함경도와 서울에서 보낸 시간이 같아지는 해를 맞이했습니다. 고향에서의 기억과 서울에 정착하는 과정의 경험은 작가의 작품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요. 안 작가는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저 너머의 형태'를 통해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저 너머의 형태' 전시 현장으로 안내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작품 설명 현장음]

“이 작업 같은 경우는 원이라는 시리즈인데, 원이라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조명에 가까워요. 제가 살았던 함경도라는 고향에서는 저 원이 주는, 엄청나게 저한테 밝은 조명이었거든요."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저 너머의 형태'의 여러 작품 가운데 함경도 출신 작가 안충국 씨가 '잊히지 않는 여린 기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 '저 너머의 형태'에서 작가는 시멘트와 아크릴로 만들어 낸 점, 선, 면의 형태들을 선보이고 있고요. 작가의 고민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30여 점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안충국 작가를 섭외하게 된 계기부터 들어봅니다. 남북통합문화센터 통합체험팀의 박근희 연구원입니다.

[녹취: 박근희 연구원] "특별전시관 같은 경우에는 통합 문화와 관련한 작품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기 위해서 준비하고 전시하고 있는데요. 안충국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모셨던 분 중에서도 가장 젊은 작가님이세요. 젊은 작가님을 발굴하고 대중들에게 선보이고자 안충국 작가님께 컨택(contact)을 드리게 되었고요. 젊은 분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활동도 그렇고 전시도 굉장히 많이 여신 분이세요. 그리고 아무래도 올해가 안충국 작가님께서 함경도에서의 시간과 서울에서의 시간이 같아지는 해입니다. 그동안 젊은 작가로서 고민했던 지점을 같이 돌아보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가와 함께 주제에 관한 논의 끝에 '저 너머의 형태'라는 제목이 탄생했는데요.

[녹취: 박근희 연구원] "작가님께 요청드렸던 부분은 탈북민 화가의 정체성에 대해서 담고 싶다고 말씀드렸었고요. 작가님께서도, 정체성은 당연히 작가에게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을 가지고 계셨고, 특히 24년도에 작업하신 작품들 같은 경우에도 ‘내가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향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면서 작업했다고 하셨습니다. 탈북민이라고 해서 북한에 있는 고향만이 자신의 정체성이지 않잖아요. 작가님께서도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걸 영감으로 활용하기도 하지만,남한에서 배운 새로운 재료들, 새로운 창작의 기법들 이런 것들이 훨씬 더 본인의 작품에 영향을 주신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작품 제목이 이러한 고민들 너머에 작가님의 고민과 열정을 봤으면 좋겠기에 제목을 작가님께서 제안 주셔서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안충국 작가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요.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녹취: 안충국 작가] "10살 때부터 함경도 있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었고요. 북한에서 생활하려면 기술이나 재능이 있으면 인정해 주기 때문에 그래서 한국 같은 경우는 디지털이나 이런 것들이 발달했지만 그쪽에서는 아직은 사람의 기술이 중요하기 때문에 저도 마찬가지로 그런 계기로 시작했고 또 아버지께서도 자신이 젊었을 때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자기가 못 그렸다는 욕망을 저한테 심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촌 누나가 그림을 배웠었는데 그 밑에서 그냥 곁눈질로 배웠었고요.”

그러다 먼저 탈북한 아버지를 따라 안충국 작가는 2009년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녹취: 안충국 작가] "한국에는 15살에 왔는데, 와서 한두 달 정도 (미술) 학원에 다니다 그만뒀어요. 한국에서 미술 하면 어렵다, 하면 안 된다는 경우도 되게 많고 또 당시에 한국에서 동생이 태어났어요. 막냇동생이 태어나면서 아버님 혼자 생활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서 경제적인 이유로 그만뒀었고요. 그만뒀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미술 선생님이 미술 할 생각이 없냐고, 그림을 보니까 괜찮았었나 봐요. 저를 학원에 장학생으로 추천해서 고1 때부터 정식으로 그림을 시작했었고요.”

그리고 그 재능을 살려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그려야 할지, 어떻게 자신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죠.

[녹취: 안충국 작가] “그때 제 정체성에 대해서 질문할 여유가 없었나 봐요. 그때 당시에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되게 신경을 많이 썼어요. 탈북민이기 때문에 탈북을 그려야 하고 북한을 그려야 하고 인권을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들 때문에 힘들었었는데 옆에서 원하는 거를 따라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리고 싶지 않은 두만강에 떠 있는 시체나 이런 것들을 드로잉하다가 잘 모르겠는 거예요. 함경도에서 지냈던 시간이나 흔적을 지금도 기억하고 작업과 연관되어 있긴 하지만, 그런 것들을 구상적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거를 똑같이 그린다고 해서 전달되지도 않고 그래서 고민하다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봤어요.”

그렇게 안충국 작가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해왔고요. 대학교를 졸업한 2021년부터 개인전을 펼쳐왔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의 주재료는 시멘트라고 하는데요.

[녹취: 안충국 작가] "제가 30살인데 저의 소신이라는 거를 담고 싶었어요. 저란 아이가 어떻게 지금까지 왔고, 어떻게 작업을 할지,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진행했고 저는 주로 작업에 시멘트를 많이 사용해요. 기반이 시멘트이고 그 위에 아크릴이 들어간다거나 또 긁어내거나 뜯어내거나 하는 흔적을 남기면서 작업하는데 시멘트라는 것 자체가 그냥 가루잖아요. 존재력이 없는, 생명력이 없는 아이인데 그거를 가지고 그 친구의 존재를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물성에 대해서, 그래서 시멘트로 벽의 느낌을 내려고 했던 이유가 장소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했었는데, 제가 거칠고 러프(rough)하고 빈티지하고 엔틱한 거를 되게 좋아해요. 제가 함경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때 봐왔던 배경이나 이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시각적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캔버스에 시멘트를 바르면, 마르면서 많이 떨어지고 부서집니다. 그 과정에서 상상하지 못한 흔적이 남겨지고요. 안충국 작가는 그 작업 과정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거쳐 한국에 온 자신과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안충국 작가] "제가 작업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장소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작업에 보면 낙서나 시멘트가 떨어져 있거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그런 것들을 제가 기존에 살았던 데서 느꼈었고, 그리고 또 한국에 와서도 지방에서 지냈었는데 지방에서 지내는 과정에서도 빈티지하고 낡은 마을이나 낡은 집을 보면서 되게 좋더라고요. 심적으로도 좋고 해서 제가 성장해 오면서 만들었던 어떤 정체성의 한 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시멘트라는 걸 이용한 이유 중의 하나는 장소성을 얘기하는 거였고 저의 작업에서는 장소, 기억, 흔적, 정체성, 이 정도의 키워드가 주요 포인트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작품의 완성은 작가와 작품(작업) 그리고 관객과 의사소통이 됐을 때 비로소 작품의 완성도가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녹취: 안충국 작가] "작품, 창작물을 냈을 때 거기에 보물찾기처럼 보물을 심어놓지 않아요. 근데 많은 일반인들이 와서 이 작업에서 뭔가 보물을 찾아가려고 하고 뭔가를 얻어가려고 하는데 그거는 어떤 누구든 간에 못 해요. 완전한 구상하시는 분들은 좀 다르겠지만, 저같이 이러한 흔적을 남기고 이러는 사람들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업한다고 생각을 안 하므로 그 작업을 보고‘여기서 뭘 표현했을까?’가 아니라 저는 사람들이 와서 그냥 지나가도 상관이 없는데 쓱 지나가다가 어느 하나 정도가 눈에 밟힌다고 하면, ‘이거를 내가 왜 보고 있을까? 나는 이걸 왜 좋아하는 걸까?’라는 자기 시간이 되기를 원해요. 그래서 자기 관점으로 보고 이거 좋구나, 나쁘구나, 이 정도에서만 해석해 줘도 너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안충국 작가는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에 정답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장의 관람객 또한 느끼는 바가 저마다 달랐는데요.관람객의 소감 들어봅니다. 먼저 탈북민 마순희 씨입니다.

[녹취: 탈북민 마순희 씨] "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자기감정을 화폭에 자유롭게 담을 수 있고 거기에다가 자기만의 영혼을 다 쏟아붓는 거잖아요. 이런 자유가 있는 세상에 와서 자기만의 꿈을 펼치는 모습을 환영하고 싶어요. 저는 그림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라 그림에 대한 평가는 못하겠어요. 그렇지만 작가의 고심과 노력과 그 모든 게 깃들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한 점이라도 소홀히 보게 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작가님이 이걸 통해서 뭘 보여주려고 했을까? 그걸 그냥 직관적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는 그림인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안충국 작가의 그림이 장벽을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녹취: 한국 시민] "이번 그림은 시멘트를 좀 많이 써서 했는데 이걸 봤을 때 남북의 장벽, 베를린 장벽이 떠오르긴 했어요. 그 장벽 너머로 이런 빛깔들이 넘어오고 하는 걸 봤을 때 우리의 마음들이 이 장벽 너머로 갈 수 있고 저기에서도 또 다른 빛이 들어오고 하는 이런 소통을 많이 느꼈거든요. 북한에 계실 때 작가님들 같은 경우 선전 그림 이런 걸 많이 그리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림들을 뉴스나 이런 걸로 봤을 때 그냥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했는데 남한에 오셔서 그림을 그릴 때 자기표현이나 사용하는 소재도 굉장히 다양하게 쓰시더라고요. 진짜 미술이나 예술의 영역은 이런 체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어떤 힘이 있겠구나, 또 그걸로 인해 울림을 주는 거구나에 있어서 꼭 북한 작가로서의 그것보다도 그냥 예술인으로서 상당히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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